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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중 통일되기 전 서독의 수도 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본 도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시이야기: 독일 본


1. 도시 역사


통일 되기 전 서도의 수도였던 본은 라인 강변 인근에 있는 도시입니다.
 “본”이란 이름은 켈트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BC 63년 전 로마 황제 Augustus가 Castra Bonnensia에 도시를 만들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4세기 때 프랭크족이 이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버리다시피 떠났다가 중세기 초에 다시 도시를 다시 복구하여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9세기에 노르만족이 다시 본을 침략합니다.
지금의 본은 260년경 그리스도교가 여기에서 세력을 가졌습니다.
특히 테베 군단(Theban Legion)과 관련된 성 Cassius와 성 Florentius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경외심이 컸습니다. 
이 성당은 4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St. Cassius 수도원의 중심역할을 해왔습니다.
중세도시는 이 당시 이 성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804년경에 도시 성곽은 이렇게 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를 9세기 때 Civitas Verona라고 불렀습니다. 
1145년에 지금의 주교좌성당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로마식과 고딕식 건축양식을 혼합한 바실리카 형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 건물 안에는 1169년 초대교회 시절 때의 순교자들의 유골들이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성 외부에는 물건을 파는 상거래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1244년 대주교 Conrad von Hochstaden가 이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본은 13세기 때 쾰른 대주교들이 여름에 거주할 수 있는 거주도시로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본은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7세기 때는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 즉,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시대 때 두 대주교 Hermann von Wied와 Gebhard Truchsess von Walburg가 타락의 길을 가면서 이 지역이 가톨릭으로부터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Ferdinand과 그의 후계자들이 다시 본을 가톨릭 도시로 만들고자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에 예수회(1590), 카푸친회(1618), 혁신 원시 회칙파 프란치스꼬회(Recollects, 1624), 카푸친회 수녀회(1629), Welsh 수녀회(1664) 등을 본으로 이주하게끔 했습니다.
그때 Graurheindorf에는 시 또 회(Cistercians)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 프랑스가 이 지역 본을 침공하면서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949년 이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고 나서 통독되기 전까지 본은 독일의 수도였습니다. 

그럼 통일 전 서독의 수도 본에는 어떠한 명소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관광명소와 볼거리

본에서는 왕궁과 이에 딸린 Coblenz 탑이 유명한 관광명소입니다.
또 본에서 유명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주의 대표 음악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생가가 여기 본에 있습니다.
또 본 대학교를 명소로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대학교는 1777년 Max Friedrich 왕자가 쾰른귀족의 아카데미로 시작하여 생겼지만 1768년 황제가 승인하여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Köln 대학을 경쟁대학으로 볼 수 있는데 본대학과 쾰른 대학이 라인 강변 지역에서 계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예전 서독의 수도 본에 대해서 알아봤고 저는 다음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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