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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독일 관광명소 중인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동독에 있는 대학이 아닌 구 서독 헤센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대학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식 명칭은 요한 볼프강 괴테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Johann Wolfgang Goethe-Universität Frankfurt am Main)입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 즉 괴테대학이라고 불리는 이 대학은 은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 있습니다.

이 대학은 헤센주에 잇는 공립 대학입니다. 
대학의 설립년도는 1914년도 입니다.

이 시기에 지어졌는데 다른 대학교와는 달리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설립한 것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부유한 시민들이 기부를 하여 이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따라서 독일 최초의 재단형 대학으로 설립된 대학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이름은 프랑크푸르트의 대표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먼저 프랑크푸르트 대학 연혁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대학의 연혁

이 대학을 설립할 때 프랑크푸르트의 시장 프란츠 아디케스이 대학 설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디케스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기업들에게 문화 및 교육 분야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메탈 게젤샤프트(Metallgesellschaft, 지금의 GEA 그룹) 회사의 창립자인 빌헬름 메르톤이 대학이 설립 될 수 있도록 기부를 하여, 사회·상업학 아카데미(Akademie für Sozial- und Handelswissenschaften)가 190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다른 연구기관도 이와 마찬가지로 민간기업들에게 기부를 받아 지원받아 설립되었고 이들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민간기업의 투자와 지원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시설이 좋은 대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재단의 재정위기가 있었지만 프랑크푸르트 시와 프로이센 정부와의 사이에 채결된 대학협정으로 인해 재정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 이후 프랑크푸르트에 유명교수들이 영입되고 프랑크푸르트에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되면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발전했습니다.

그럼 프랑크푸르트 대학 출신으로 어떤 유명인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대학 출신 유명인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출신 유명인으로 누구나 다하는 독일 전 독일 연방수상 헬무트 콜이 있습니다. 전 콜 수상은 법학과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헬무트 콜 외에도 법학을 전공한 정치가는 기민련 출신의 전 헤센 주지사 롤란트 코흐가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고 문헌학 박사학위를 받은 수영선수 미하엘 그로스, 
영어, 역사 교육학을 전공한 사민당 출신의 전 연방 경제협력 개발부 장관 하이데마리 비초렉초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배출된 노벨상 수장자는 누가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3.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총 19명이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에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파울 에를리히: 1908년 생리·의학상
막스 폰 라우에: 1914년 물리학상
파울 카러: 1937년 화학상
오토 슈테: 1943년 물리학상
막스 보른:  1954년 물리학상
알렉산더 토드: 1957년 화학상
카를 치글러: 1963년 화학상
한스 베테: 1967년 물리학상
게르트 비니히: 1986년 물리학상
하르트무트 미헬: 1988년 화학상
라인하르트 젤텐: 1994년 경제학상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 1995년 생리·의학상
호어스트 루트비히 슈퇴르머:  1998년 물리학상
귄터 블로벨:1999년 생리·의학상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프랑프푸르트 대학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다음번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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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중 통일되기 전 서독의 수도 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본 도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시이야기: 독일 본


1. 도시 역사


통일 되기 전 서도의 수도였던 본은 라인 강변 인근에 있는 도시입니다.
 “본”이란 이름은 켈트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BC 63년 전 로마 황제 Augustus가 Castra Bonnensia에 도시를 만들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4세기 때 프랭크족이 이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버리다시피 떠났다가 중세기 초에 다시 도시를 다시 복구하여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9세기에 노르만족이 다시 본을 침략합니다.
지금의 본은 260년경 그리스도교가 여기에서 세력을 가졌습니다.
특히 테베 군단(Theban Legion)과 관련된 성 Cassius와 성 Florentius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경외심이 컸습니다. 
이 성당은 4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St. Cassius 수도원의 중심역할을 해왔습니다.
중세도시는 이 당시 이 성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804년경에 도시 성곽은 이렇게 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를 9세기 때 Civitas Verona라고 불렀습니다. 
1145년에 지금의 주교좌성당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로마식과 고딕식 건축양식을 혼합한 바실리카 형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 건물 안에는 1169년 초대교회 시절 때의 순교자들의 유골들이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성 외부에는 물건을 파는 상거래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1244년 대주교 Conrad von Hochstaden가 이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본은 13세기 때 쾰른 대주교들이 여름에 거주할 수 있는 거주도시로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본은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7세기 때는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 즉,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시대 때 두 대주교 Hermann von Wied와 Gebhard Truchsess von Walburg가 타락의 길을 가면서 이 지역이 가톨릭으로부터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Ferdinand과 그의 후계자들이 다시 본을 가톨릭 도시로 만들고자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에 예수회(1590), 카푸친회(1618), 혁신 원시 회칙파 프란치스꼬회(Recollects, 1624), 카푸친회 수녀회(1629), Welsh 수녀회(1664) 등을 본으로 이주하게끔 했습니다.
그때 Graurheindorf에는 시 또 회(Cistercians)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 프랑스가 이 지역 본을 침공하면서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949년 이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고 나서 통독되기 전까지 본은 독일의 수도였습니다. 

그럼 통일 전 서독의 수도 본에는 어떠한 명소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관광명소와 볼거리

본에서는 왕궁과 이에 딸린 Coblenz 탑이 유명한 관광명소입니다.
또 본에서 유명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주의 대표 음악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생가가 여기 본에 있습니다.
또 본 대학교를 명소로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대학교는 1777년 Max Friedrich 왕자가 쾰른귀족의 아카데미로 시작하여 생겼지만 1768년 황제가 승인하여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Köln 대학을 경쟁대학으로 볼 수 있는데 본대학과 쾰른 대학이 라인 강변 지역에서 계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예전 서독의 수도 본에 대해서 알아봤고 저는 다음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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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두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중 작은 도시인 코블렌츠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코블렌츠는 독일 중부 지역 라인란트팔츠 주에 있는 작은 도십니다.
이 도시에는 두개의 강이 흐르는데 라인 강과 모젤 강의 이 도시에서 만나서 갈라져 흐릅니다. 
코블렌츠 도시 자체는 작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이미 11세기에 모젤 강 부분에 요새가 생겼습니다.
과거 로마 제국 시절부터 발전한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럼 이 작은 도시 코블렌츠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코블렌츠 도시 역사

 

 BC 2세기 때 로마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가 카스텔 룸 아푸 드콘 플루엔 테스(Castellum apud Confluentes)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에 도시가 지어졌습니다.
1018년 이후 트리어 대주교가 이 도시 코블렌츠를 통치하면서18세기 말까지 트리어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17세기까지 선제후의 소재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코블렌츠는 신성로마제국황제 콘라트 2세가 이 코블렌츠에서 선출된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1216에 독일기사단은  트리에르 대주교 테오데리히 폰 비트의 초청을 받아 코블렌츠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기사단은 도이취 에크에 있는 성 카스토르 교회 근처에서 법을 집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카스트로 교회는 200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나중에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영토를 프로이센 왕국이 점령했습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코블렌츠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786년 트리에르의 마지막 선제후이자 대주교인 클레멘스 벤 세스 라우스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이 건축물을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으로 개조하여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빈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코블렌츠는 프로이센 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코블렌츠는 독일 국방군 B군의 주둔지였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제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이 코블렌츠를 폭격해서 도시에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고 그 피해 또한 심했습니다.
그러다 그 이후 코블렌츠에 있던 건축물은 재건축되어 복구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 역사적인 도시 코블렌츠에는 어떠한 명소가 있고 어떤 문화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코블렌츠 도시의 관광 및 볼거리, 문화


코블렌츠에는 도이치 에케(Deutsches Ecke)라는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모젤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곳 독일 모퉁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처럼 모젤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위치에서 독일 가장 모퉁이에 이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1888년 빌헬름 2세 황제가 민족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독일제국의 창립자를 기리는 키프호이저 기념비와 빌헬름 1세 기념비를 설립하기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키프호이저 기념비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를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빌헬름 2세가 1897년에 도이치 에케 이 장소에 브루노 슈미츠가 설계한 37m 높이의 빌헬름 1세 기념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통독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동상 재건립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블렌츠의 한 신문 발행인 베르너 타이젠이 재건에 대한 비용 부담을 기증하면서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뒤셀도르프 조각가 라이몬트 키틀이 제작한 복제품 동상이 여기에 세워졌습니다. 

코블렌츠의 방어를 위한 성곽이 도시 서쪽 언덕 위에 있습니다
여기 성곽과 라인강 반대편 강둑에 있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성(城)이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코블렌츠 시내에는 트리에르의 마지막 선제후가 1786년 지은 코블렌츠 선제후 궁전이 있습니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가장 끝자락 모퉁이에 있는 코블렌츠 방문해 보시는 것 어떨까요?

그럼 저는 다음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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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한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슈투트가르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유럽 도시이야기: 독일 슈튜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의 독일어 표기는 Stuttgart로 되어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우리 한국 사람에겐 발레리나 강수지가 있었던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는 발레만 하는 도시일까요?

독일 남독에 있는 슈투트가르트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수도이자 최대 도시입니다. 
독일에서는 6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그럼 슈튜트가르트 도시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자동차 역사의 본고장 슈투트가르트

 


보통 독일을 생각하면 독일 자동차를 많이 떠오르는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보쉬의 본사가 여기 슈투트가르트에 있습니다.
그래서 슈튜트가르트 도시는 자동차 관련 사업이 발달되었습니다. 
독일 자동차 역사의 본고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최고의 자동차로 알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셰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덕분에 이 도시에는 자동차의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습니다.
자동차의 본고장이기도 하지만 슈튜트가르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이어 금융의 도시라고 불립니다.
산업과 금융 이 두 마리의 토끼를 가진 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슈튜트가르트 도시에서는 어디를 둘러보아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슈튜트가르트 관광명소와 문화

 


슈투트가르트 도시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가깝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철도가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슈투트가르트까지 이동하는데 편합니다..

슈튜트가트는 이미 위에서 언급해드린 것처럼 자동차의 본고장이어서 관광명소로는 자연스럽게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과 포르셰 박물관이 대표적인 명소입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그 규모가 상당하 유명합니다.
이에 반해 포르쉐 박물관은 크기가 벤츠 박물관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전시물 내용이 좋은 것이 많습니다.
또한 포르쉐 박물관에선 시승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도심에는 중앙역부터 도심 안쪽으로 이어지는 쾨니히 슈트라세에는 오페라 하우스, 국립극장, 쿤스트 뮤지엄 등등의 문화시설과 쇼핑센터가 많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가장 긴 보행자 전용도로가 슈튜트가르트 여기 있습니다.
도심을 둘러싼 산 언덕에 위치한 테하우스(Teehaus)나 칼스회에(Karlshöhe) 같은 전망 포인트의 비어가 텐에서 시내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이 슈튜트가르트 근방에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명품 아웃렛 메칭엔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긴 보행자의 길을 거닐면서 맥주 한 잔 마셔보는 것 어떨까요?

그럼 저는 다음 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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