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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의 두번째 이야기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도시 이야기


베네치아는 이미 우리에겐 베니스의 상인, 베니스 영화제로 베니스라는 영어로 많이 알려진 도시입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에 있고 베네토주에 속한 도시입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던 베네치아는 수상도시, 운하도시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많는 관광도시입니다.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입니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가면의 도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고요.
베네치아는 예술, 건축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발전의 큰 이바지를 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발디 사계로 잘 알려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고향입니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또 육지로부터 약 3.7 km 떨어져 있고요.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라틴어 단어 'Venetia'에서 나았습니다.
‘베네치아’라는 용어는 로마 제국 시대에 때 해안 지역을 이렇게 베네치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 라틴어 단어 'Venetia'는 이 곳에 살던 '베네티인'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베네치아는 '매혹적인', '사랑스러운' 의미를 가졌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베네치아가 라틴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짐작하고 라틴어 'Venetus'의 의미처럼 '바다처럼 푸르다'라는 유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중세와 르네상스 때 유럽의 해상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과 레판토 전쟁에 정치적으로 휘말리면서부터 유럽 정치 논란의 도시였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비단, 향료, 밀을 거래하는 상업도시였고 유럽에서 부자의 도시로 소문난 도시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전쟁과 빈 회의 이후,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고, 1866년에 이탈리아가 통일되며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럼 베네치아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베네치아 역사


정확한 기록은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지만, 로마제국이 망하면서 국경선이 무너져, 훈족들이 침입했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로마인들이 6세기에 베네치아로 피난해 살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를 세운 12개의 가문들이 모두 로마의 귀족들과 관련이 있는 혈통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베네치아 섬으로 피난오기 전에는 그냥 볼품없는 습지였는데 로마인들이 여기로 들어오면서 대도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AD 2세기 때 로마 제국은 쇠태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르만족들이 넘어와 이탈리아 본토의 도시들을 공격했고요
고트족들이 로마를 거의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들이 로마 내부로 들어와서 로마제국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로마 제국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으로 동, 서로마로 나누어 각자 통치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특수한 지역성 때문에 동로마 제국의 통치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오히려 베네치아의 지역의 자립성만 커지게 되었지요.

베네치아의 첫 총독이697년에 선출되었지만 726년에 동로마 황제가 성상 파괴 운동을 지시하여 교황의 신같이 모시는 베네치아의 시민들은 동로마 황제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사태로 동로마 총독은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처형을 당했는데 지도자를 잃은 베네치아의 관료들과 시민들은 큰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베네치아 시민들은 동로마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이들만의 새로운 총독을 뽑으면서 베네치아 총독의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다가 751년, 롬바르드인들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정복하면서, 베네치아는 동로마제국으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했습니다.
동로마의 총독은 베네치아로 그 주거지를 옮겼고 그를 따라 수많은 난민들이 몰려들며 베네치아는 점차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성 마르코 대성당의 지어지기 시작되었습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베네치아를 정복을 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활용했습니다.
교황을 압박해서 베네치아를 정복하고자 했지만 베네치아가 지형적으로 가진 특수성으로 기후, 전염병과 또 비용적으로 너무나 커서 베네치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구 베네치아는 영구적인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828년에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보관되어 있던 성 마르코의 성물을 베네치아로 훔쳐오면서부터 베네치아는 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교좌도 베네치아로 옮겨오면서, 베네치아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커지며 결국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의 통치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9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베네치아는 커다란 강한 도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아드리아 해에 위치해 있는 베네치아는 해상 무역에서 유리한 입지였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해군력으로 상인들을 보호하며 유럽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해적의 공격을 막고자 아드리아 바다 동쪽의 여러 섬들을 점령하고 기지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베네치아는 또한 소금 무역을 장악하면서 거대한 해상 제국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중해의 크레타, 키프로스 섬을 장악하며 에게 해의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그 때 당시 베네치아는 인근들 국가 중 최강국들 중 하나였다.
또한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에서 독립은 했지만, 동로마 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도 했습니다.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을 도와주고 여러가지 공로를 세우면서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무역 특권을 받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는 4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204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되고 대약탈이 진행되면서, 동로마 제국에 있던 많은 문화재들이 베네치아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성 마르코 대성당 입구 위에 올려져 있는 청동으로 된 4마리의 말들도 이 시간에 들어왔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후, 동로마 제국은 라틴 제국과 베네치아가 각각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중해 세계에서 베네치아의 발언권은 갈수록 강해지고 치혈해졌습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으로서는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 되어 아나톨리아 반도를 잃음으로써 국력이 약해졌습니다. 
그 후 50년 후 콘스탄티노플을 되찾긴 했어도 동로마 제국은 멸망할 때까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로마제국의 쇠퇴하는 반대로 아드리아 해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동로마, 이슬람 세계와 거래하며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13세기 후반에 베네치아는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였고 33,000척에 달하는 배를 소유한 부유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유명한 가문들은 앞다투어 베네치아에 아름다운 궁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귀족들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 도시는 대귀족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로 이루어졌습니다. 
의회의 의원들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가 총독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들 또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권력이 약해지거나 실패했을 때 총독들은 사퇴하거나 수도원으로 이동될 정도로 강요 받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정치와 군사는 철저히 분리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인들은 대부분 전쟁을 상업적 거래의 일부분으로 보았습니다.
베네치아인들은 실용주의자였기에 전 유럽이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싸울 때에도 크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황에게 큰 반발을 샀으며, 여러 차례의 종교 재판으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5세기에 독일에서 새로 발명된 인쇄기는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인쇄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빨리 깨달은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였고, 1482년에 베네치아는 이미 유럽 인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5세기, 베네치아는 테살로니카를 점령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력이 승천하던 오스만 제국 군대에게 패배당했습니다.
그 이후 베네치아는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베네치아의 동부 무역로를 막아 버림으로써 베네치아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베네치아를 거치지 않고 인도로 갈 수 있는 신항로를 개척하면서 중계 무역을 주로 했던 베네치아의 상업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14, 16세기에 흑사병이 대대적으로 유행하면서 베네치아의 인구가 감소되었고, 전염병이 돌아 5만 명의 시민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630년, 이탈리아 전역에 전염병이 창궐하며 당시 시민의 3분의 1이 죽으며 베네치아의 쇠퇴는 더더욱 빨라졌고요.
르네상스 후반에 포르투갈이 국제 무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며 베네치아는 점점 더 멸망해갔습니다. 
베네치아에는 18세기 후반까지 농산물만 대량 거래하며 제조업의 중심지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18세기에는 예술가들이 베네치아에서 예술, 건축, 문학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1797년 5월 베네치아를 점령하며 오랫동안 베네치아가 누려왔던 독립도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전 유럽에서 가장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유대인들은 나폴레옹을 일종의 구원자로 여겼고, 나폴레옹은 이를 화답하며 유대인 격리 구역을 없애 버렸으며 차별을 철폐했습니다.
1814년 나폴레옹이 패망하며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1849년에 반란이 일어나 베네치아 공화국을 다시 건설했으나, 1866년에 이탈리아 통일 전쟁이 일어나며 결국 베네치아는 통일 이탈리아로 흡수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네치아는 공습이나 폭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군 공군이 독일 잠수함을 요격하기 위한 포격이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진 거의 유일한 전투 사태였지만 베네치아의 건물들이 파괴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구시가지 외곽 철도, 산업 지대들은 공습을 받았습니다.
1945년 4월, 연합군이 진군하여 드디어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신음하던 베네치아를 해방시킴으로써 다시 베네치아는 평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예쁜 운하와 항구들은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베네치아의 경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베네치아 경제


베네치아의 경제는 주로 관광업과 조선업, 서비스업, 무역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특산품으로 레이스와 유리가 유명합니다.
베네치아는 지금 경제적으로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2016년 후반, 베네치아의 부채는 4억 유로를 넘어갔습니다.
더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사실상 베네치아는 파산 상태에 이르렀으며 지역 주민들은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는 홍수로 인한 침식, 과도한 관광객으로 인한 환경오염, 도시 주변을 운행하면 거대 유람선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6월, 이탈리아는 베네치아의 파산을 막기 위해 52억 유로에 달하는 긴급 자금을 투입했고, 베네치아 은행의 손실과 손해에 대해서 정부가 보상해주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네치아의 볼거리 관광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베네치아의 관광 및 문화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물의 도시입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영화제, 다양한 국제 컨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들의 개최지가 되면서, 예술과 문화, 경제, 영화 등과 같은 요소들을 사용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이 도시를 방문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베네치아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등과 같은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118개에 달하는 섬들이 다리와 수로들로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적으로 베네치아에서 사용되었던 교통수단은 곤돌라입니다. 다만 현재는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는 중이고, 장례식, 결혼과 같은 중대사에서만 간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장구한 세월동안 극작가, 시인,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유럽의 인쇄 및 출판의 중심지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베네치아의 작가들에는 마르코 폴로, 자코모 카사노바가 있습니다
.
베네치아는 수많은 서양의 작가들에게 모델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여 오셀로와 베니스의 상인이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매년 거대한 축제가 열립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세계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입니다.
1895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1942년 전쟁의 여파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6년 후 다시 운영되었습니다.
베네치아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입니다.
1932년 한 백작에 의해 처음 시작된 이 영화제는 매년 8월과 9월 사이에 열리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베네치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저는 다음 번 도시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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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랑잠언니입니다.

오늘 유럽 도시 이야기 첫 번째로 먼저 프랑크푸르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시 이야기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헤센 주의 수도 도시입니다.
공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또는 Frankfurt a.M.)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시가 두 군데라는 것 혹시 알고 계셨나요?

또 다른 도시의 프랑크푸르트는 동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동독에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라고 부르고 헤센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인구는 76만여 명으로 독일에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다음이지만, 프랑크푸르트 인근 주변 도시에 인구까지 합하면 580만 명이 넘어 독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독일 대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미국의 뉴욕처럼 유럽의 금융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시내에는 초고층 빌딩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인구비중을 살펴보면 외국인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인구의 약 30퍼센트가량은 외국인입니다.
독일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높습니다.

그럼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2.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역사

프랑크푸르트 도시는 프랑크 왕국 시대 때 팔츠가 존재하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 왕국 시대에는 수도였기도 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는 황제 선거가 열리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독일 왕국이나 신성로마제국에서도 '수도'라는 공식 명칭이 법적으로 정해지지 않아서 수도의 의미가 크게 크지 않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빈 회의 이후에는 독일 연방의 4개 자유 도시 중 하나였는데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프로이센에 점령되어 헤센-나사우 중에 강제로 통합되었습니다.

그 이후 1945년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패전된 후 프랑크푸르트는 완전 폐허가 되었습니다.

패전 후 프랑크푸르트는 1945년 미국 점령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 뒤 냉전시대에서 프랑크푸르트는 세계 제일의 전략적 요충지로 되었습니다.

독일이 분단되어 서독, 동독으로 나뉘면서 프랑크푸르트는 미군들이 집결된 군사적 요충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통일이 되어 프랑크푸르트는 군사도시라는 이미지보다 분단 시절의 아픔을 담은 추억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통독이 된 후 1990년 독일 재통일 당시에도 프로이센,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 대신 프랑크푸르트를 통일된 독일의 수도로 지정하자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가 수도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독일의 뿌리는 프로이센이기 때문이며 베를린에 대한 상징성이 너무 커서 그것을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수도는 프로이센의 중심지 베를린으로 정하고, 다른 도시들 즉, 뮌헨,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에어프루트, 본, 함부르크 등)에 주요 기능들을 분산시키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를린은 수도로 의미만 두고 지방분권연방제를 유지한다는 거죠.

그럼 프랑크푸르트에 유명한 인물 중 누가 있을까요?
프랑크푸르트 출신 인물로 너무나 유명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차두리선수도 프랑크푸르트 태생입니다.

2. 교육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금융, 경제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학문의 중심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교육열도 그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높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사회학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발생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도서박람회도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됩니다. 독일 국립도서관도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름을 딴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도 프랑크푸르트에 있습니다.

노벨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막스 플랑크 연구소 5군데 즉, 막스플랑크 뇌 연구소, 막스플랑크 경험적 미학 연구소, 막스플랑크 유럽 법학 연구소,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학 연구소, 막스플랑크 신경유전학 연구소가 프랑크푸르트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독일 보수주의 대표 언론사이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언론사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3. 교통

프랑크푸르트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내 최대 교통의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시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역으로는 프랑크푸르트 동역과 프랑크푸르트 남역,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 역을 말할 수 있고요.

프랑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은 국제적으로 큰 공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공항은 유럽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9개 노선의 지하철도 프랑크푸르트에선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할 수 있는 관광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 관광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Altstadt)에는 80년대 초 복원한 중세, 르네상스 풍의 시청사, 그 주위의 유서 깊은 저택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에는 괴테 생가도 있습니다.

슈테델 미술관을 꼽을 수 있는데 여기에는 중세부터 현대 미술까지의 방대한 컬렉션이 있어 볼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Naturmuseum Senckenberg)도 독일에서는 유명합니다.
여기서 공룡 화석 즉, 티라노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이구아노돈, 오비랍토르,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에우오플로케팔루스, 파라사우롤로푸스, 플라테오사우루스, 콤프소그나투스, 아르카이옵테릭스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전경을 보고 싶다면 마인 타워(Main Tower)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입장료를 내고 루프탑에서 프랑크푸르트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쇼핑의 도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내 중앙의 바로크풍의 건물인 Hauptwache(중앙 경비초소)를 중심으로 해서 괴테 거리로 가면 루이뷔통, 지미추, 프라다, 에르메스 등의 명품샵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근방에 백화점, H&M, ZARA, 풋락커, 에스프리처럼 샵들이 있어서 쇼핑하기에 편리합니다.
관광 외에도 프랑크푸르트는 세계 최대 박람회 도시이기도 합니다.

다음엔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고 있는 박람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5. 박람회


프랑크푸르트 전시장 즉 메세(Messe)라고 하는데 국제적으로 프랑크푸르트 박람회는 유명합니다.
메세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전시장)에서는 1년 내내 여러 분야의 박람회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국제적으로 유명합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경우 매년 10월에 5일간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시회입니다.
22년의 경우 10월19일에서 23일까지 프랑크푸르트 메세에서 진행됩니다.
22년의 경우10월 19일(수) - 23일(일)에 열립니다.

그리고 최근에 자동차 부품 박람회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할 때 박람회 기간에는 숙박비가 다른 때보다 몇 배 더 비싼 이 기간을 피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프랑크푸르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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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랑잠언니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시나요?

혹시 여행 가셔서 그 도시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은 하시는지요?

보통 해외여행가면 가이드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냥 피곤하다는 느낌.

저만 그럴까요?

유럽여행: 독일 에슈보른


저는 다음달 초부터 두어 달 유럽에 지낼 계획인데요.
그래서 다음달 유럽여행을 앞두고 사전에 여행 일정과 방문한 도시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자 자료를 준비해봤어요.
모처럼 가는 여행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어 가기 전에 미리 사전조사 차원에서 제가 방문하는 도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여행했던 것처럼 아무런 내용도 없이 사진 몇장만 내 핸드폰 속에 담아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었어요.

그래서 미리 공부를 하고 도시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먼저 제 일정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며칠 보낸 뒤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로나, 피렌체, 라스페찌아, 볼로냐를 방문 후 다시 베네치아 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오는 일정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혼자서 여행도 즐기고 여행도 잘하는 편이지만 사전에 미리 공부해서 가본적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사실 유럽에 여러 번 갔다 왔어도 방문했던 도시의 사진만 머릿속에 남아있고 그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없어서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그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먼저 공부해보고 여행가서 직접 눈으로 담으려 합니다.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어서 약간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려움보다 설렘이 크기에 여행을 떠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글로 올릴 계획이니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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