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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 번째 이야기로 독일에서 친환경도시, 생태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도시이야기: 독일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이 작은 도시는 남독에 위치하고 있어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서 가깝습니다.
라인 강 주변에 있고 검은 숲이라 불리는 슈바르츠발트로 삼림 지대에 있습니다. 

그럼 이 작은 도시 프라이부르크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도시의 역사는 1120년에 시작됩니다. 
이 때 이후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지만, 합스부르크·바이에른·오스트리아·프랑스 여러 나라, 여러 왕조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7세기 30년 전쟁으로 프라이부르크 도시 자체가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1805년 브라이스가우 지역은 완전히 바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1827년 가톨릭 대교구가 프라이부르크 도시에 생기면서 대주교좌가 거주하는 도시로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프라이부르크는 가톨릭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대주교좌의 대성당은 13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성당 종탑의 높이가 116m 정도로 높습니다. 
1457년에 설립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가 있어 프라이부르그르를 대학 도시라고도 부릅니다. 대성당과 많은 옛 건물이 있는 구 시가지에는 매년 3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럼 프라이부르크 도시에 볼거리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프라이부르크 관광지와 명소
프라이부르그 구시가지에 성이 산 중턱에 있는데 이 성을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라고 부릅니다.
여기 숲과 산책로, 노르딕 워킹 코스가 인기 있는 휴양지입니다.
이 성 꼭대기 위에서 도시 전체와 검은숲이라고 불리는 슈바르츠발트에서  Vogesen 지역까지에 이르는 주변 지역의 아름답고 황홀한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바거호수였던 아를레스하이머 호수(Arlesheimer See)는 오늘날 도시의 서쪽 가장자리 무스발트(Mooswald)에 있는 자연 보호구역 지대입니다.
프라이부르크 도시 거리에는 실개천(Bächle)이 눈에 많이 보입니다.
이 실개천은 대부분 골목길들의 가장자리나 구시가지 거리들에 있는 작은 수로를 의미하며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입니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부르크 도시를 거닐다 보면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전체 교통 발생량 중 자전거 교통의 비중으로 40% 가량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이 도시 정책상 프라이부르크를 생태도시, 환경도시로 유지하고자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도시를 깨끗하게 보존하고자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는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모습 우리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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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로 예전 동독 지역에 있던 포츠담이란 작은 도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포츠담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25km 정도 남서쪽으로 떨어져 있고 인구 2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하펠 강 주변에 있는 도시입니다.
포츠담은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행정 수도이기도 합니다. 
포츠담은 호수와 강, 숲으로 둘러 쌓인 작은 도시입니다.
포츠담은 작은 도시이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츠담 회담의 장소가 이 도시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이 작은 도시 포츠담 역사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포츠담 도시의 역사

 

포츠담은 주변이 숲과 호수로 둘러 쌓여 있어서10세기부터 이미 별장지와 같은 도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호엔촐레른 왕가가 포츠담에 여름 별장지로 사용했을 정도로 포츠담에는 화려하고 예쁜 궁전들이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자 휴양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포츠담은 빌헬름 2세때부터 브란덴부르크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황제의 도시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지금은 세 개의 대학교과 30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포츠담에 있어 포츠담을 산업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한때 포츠담은17세기 이전까지 인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별로 없어서 그냥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1685년에 브란덴부르크 성에 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가 포츠담 도시에서 포츠담 칙령을 반포하여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 민족들이 포츠담으로 이주하면서 포츠담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 포츠담에 화려한 상수시 궁전과 별궁을 짓게 되면서 프로이센 왕가가 포츠담에 살게 되면서 포츠담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815년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 주의 수도였지만 1827~1843년 사이와 1918년~1945년 때에는 베를린이 수도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떼 옆 도시 베를린은 연합군에 의해 많이 파괴가 되었지만 포츠담의 경우 그리 심하게 침략을 받지 않아 훼손이 적어서 어느 정도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포츠담에 있는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그 유명한 포츠담 회담이 열리었습니다. 
그 이후 동독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독 통치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통일 이후 포츠담은 새롭게 조성된 브란덴부르크 주의 행정수도가 다시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까지 포츠담은 도시의 초기 외관을 복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포츠담에서 볼거리 여행지를 알아보겠습니다.

2. 포츠담 볼거리와 여행지

포츠담에는 화려한 상수시 궁전이 유명합니다.
상수시 궁전이 안에 있는 공원과 여러 별궁도 꼭 들려야 하는 명소입니다.
또한 포츠담 대학을 마주보고 있는 궁전이 있는데 이 궁전에서 포츠담 선언이 개최되었는 이 궁전의 이름이 체칠리엔호프 궁전입니다.
체칠리엔호프 궁전 근처에도 대리석으로 둘러 쌓인 대리석 궁전도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옛 동독에 있던 화려한 작은 도시 포츠담에 대해 말씀드렸고 저는 다음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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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보통 많은 분들은 독일의 수도를 본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통일이 되고 나서 베를린이 독일 수도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수도이면서 독일에서도 대도시이지만 EU에서도 대도시에 속합니다. 인구는 380만 명에 가깝습니다.

베를린은 통독 전에 동독 브란덴부르크 주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이 때 동베를린은 동독에서 관리하고 서베를린은 서독에서 관할했습니다. 
동독 안에 있는 서베를린은 섬과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베를린의 역사


1500년 전에는 지금의 베를린 도시에는 여러 민족들이 살았는데 특히 슬라브 민족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100년대에 게르만족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베를린은 작은 15세기에 들어서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주에서 아주 크고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15세기 후반에 호엔촐레른 왕가가 베를린에 자신의 관저로 만들었는데 30년 전쟁 때 베를린은 큰 피해를 입었고 이때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도시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 때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브란덴부르크주를 1640년부터 1688년까지 통치하였고,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70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베를린을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1700년대에 베를린은 작은 도시에서 벗어나 제조업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으면서 도시가 성장했습니다. 
예술과 과학, 경제와 산업이 신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가 1806년부터 1808년까지 베를린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나폴레옹이 떠나자 베를린은 다시 독일의 강국이 된 프로이센의 수도로 자리를 잡으면서 번창해졌습니다. 
그 후 1871년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독일의 수도였지만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에 독일 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베를린은 새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 기간 동안에 파업, 폭동,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베를린은 파멸의 도시처럼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로 번져간 경제 대공황으로 베를린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세워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이 독일을 나누어 통치했었고 또 동독 안에 있는 베를린도 4개로 분할하여 관리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독일이 분단되면서 베를린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전쟁 전 까지만 하더라도 베를린이 독일의 수도였지만 분단 후 서베를린은 서독과는 다른 서방 연합군의 점령지로 간주되어 수도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통일 전 명목상 수도는 본이 되었습니다. 
한편 동베를린도 소련군의 점령지로 간주되어 수도의 기능은 가지고 있었지만 명목상 동독의 수도는 포츠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냉전기 동안 서베를린은 동독으로 둘러싸인 자유 진영의 섬이라고 불러졌습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베를린 시민들이 늘자, 이를 막기 위해서 독일 민주공화국 정부는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는데 아 장벽이 냉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베를린은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럼 다음엔 독일의 수도, 분담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베를린에서 꼭 보아야 할 것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2 관광과 문화


이미 우리에겐 베를린 영화제로 잘 알려져 있듯이 베를린은 예술의 도시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니도 유명하고요.

독일 명소로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그 주변 의회 의사당, 소련군 전승기념비,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포츠담 광장, 동서 베를린 경계의 연합군-소련군 초소중 가장 유명한 체크 포인트 찰리가 있습니다.
또 연합군의 폭격을 맞은 유명한 베를린 Zoologischer Garten 앞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아직 폭격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매년 2월에는 베를린 영화제도 열립니다
베를린 돔(성당)도 꼭 가야할 명소입니다.
베를린에는 박물관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구 박물관, 신 박물관, 구 국립미술관, 이집트 박물관이 한 데 모여있는 박물관 섬(Museumsinsel)이 있습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근동의 유적들을 통째로 옮겨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베를린 성을 기준으로 슈프레 강 건너편에 냉전시대의 동독 시절 생활상을 인터랙티브 전시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 DDR 박물관이 있습니다. 
또 베를린의 상징적인 음식이 되어 버린 커리부어스트(카레소시지) 박물관도 있고

베를린 옆에 있는 포츠담 회담으로 유명한 포츠담에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또 베를린에는 쇼핑천국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 동물원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쿠담 (Kurfürstendamm) 거리라고 부르는 명품거리와 알렉산더 광장에 갤러리아 백화점도 있어 쇼핑하기에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독일 도시 베를린에 대해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다음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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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일곱 번째 이야기로 통일 전 독일의 동독에 있던 도시 드레스덴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드레스덴은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독에 있는 도시이고 독일 작센주에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남쪽방향으로 189km 떨어져 있습니다.
드레스덴은 슬라비 언어로 ‘숲 속의 언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드레스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드레스덴의 역사


원래 드레스덴이란 도시에는 슬라브 민족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중세시대 게르만족이 독일 동부 쪽을 개척하면서 게르만족이 이쪽으로 많이 이주해왔습니다. 
1200년 전에 이미 성이 만들어졌으며, 1206년에 도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인 하인리히 3세가 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316년에 잠깐 브란덴부르크 변경 백작의 통치를 받았으나 1319년에 다시 베틴 가문에게 되돌려졌습니다.

라이프 조약으로 1485년에 베틴 귀족의 영지가 알브 레 히트계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슈말칼덴 전쟁에서 작센-마이센 공작 모리츠는 독일왕 페르디난트 1세와 동맹을 맺어 1547년에 작센 선제후로 되어 드레스덴을 거주지로 지정하면서부터 드레스덴은 작센 수도가 되었습니다.
17세기에 발생한 30년 전쟁과 1685년 대화재로 드레스덴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드레스덴 도시 주위에 성벽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와 2세가 있는 동안 드레스덴에 각종 문화시설을 정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우면서 독일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7년 전쟁 때 작센이 오스트리아와 연합하여 프로이센 군에 대항하다 프로이센 군의 포격을 받아 드레스덴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이후도 나폴레옹 전쟁 때 작센이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 도시를 작전기지로 삼고 동맹군과 싸웠기 때문에 드레스덴의 피해는 컸습니다. 
그 이후 독일 산업화로 인한 경제적으로 경기가 살아나면서 산업초기에 기계, 엔지니어링, 자동차, 항공, 카메라, 초콜릿 산업 등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드레스덴은 1945년 이전까지 독일의 도시 중 가장 활발한 산업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이후 드레스덴은 1945년 2월 14일 영국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건축물들과 공장시설이 파괴되는 도시 전체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 후 드레스덴이 동독으로 편입되면서 주요 공장들이 해체되고, 많은 기업들은 본사를 서독으로 이전했습니다. 

전쟁 이후 도시의 고 건축물에 대한 일부 복구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독 정권 하에서 복구 속도는 매우 지지부진했으며 드레스덴에 남아있던 유일한 고딕 건축 양식의 건물이었던 성 소피아 성당(Sophienkirche)은 1962년 발터 울브리히트의 지시로 완전히 철거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 30여년 가까이 엘베 강변의 브륄 테라스(Brühlsche Terrasse)를 근방 일부 건물을 빼고 드레스덴의 구 시가지, 특히 노이마르크트(Neumarkt)는 복구도 되지 않는 상태로 그냥 폐허의 도시가 되어갔습니다.
알트마르크트(Altmarkt)와 프라하 거리(Prager Straße)의 경우 1960년대 후반 이후 사회주의 양식으로 다시 짓게 되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989년 동독 정권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드레스덴은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통일 직후 연방정부는 폐허가 된 구시가지를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레스덴 도시의 복원작업은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입니다.
그럼 이 역사적인 도시 드레스덴의 볼거리 관광지를 알아보겠습니다.



2. 드레스덴에서 관광할 곳

 

드레스덴에는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엘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건설로 그 문화유산적 가치가 크게 훼손되어 2009년 세계유산에서 지정되었던 것이 해제가 되었습니다. 

드레스덴 동쪽으로는 엘베강이 체코에서 독일로 흐르며 좁은 협곡이 있는 이곳의 경치가 알프스라고 부를 만큼 빼어나게 좋습니다.

또 드레스덴 도시 곳곳에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과 예술품들 덕분에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 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궁전들과 박물관, 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드레스덴은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드레스덴에 국립 관현악단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딴 젬퍼오퍼(Semperoper)라는 오페라 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드레스덴의 볼거리 관광할 곳 알아보겠습니다..

드레스덴 구시지를 둘러보면 시장과장과 알트마르크트 광장, 시청사와 십자가 교회 등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곳들이 드레스덴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입니다. 
시청사의 탑 위에는 금박을 입힌 높이 4.9m의 '황금 사나이' 동상이 있는데. 시청사 발코니에서는 드레스덴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청사 건물 옆에는 외벽이 검게 그을린 십자가 교회가 있는데, 바로크 후기와 초기 고전주의 초기 양식의 건물로 남아있는데 그 역사가 700년이 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1434년부터 시작된 Striezelmarkt가 열려 크리스마스 시장이 유명합니다. 

그밖에 성모 교회 또는 프라우엔 키르헤 (Die Frauenkirche in Dresden)라고 불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엘베 강변을 따라 하인리히 폰 브륄이 설계한 높고 넓은 정원테라스가 펼쳐 있으며, 현대미술관인 알베르티 눔(Albertinum)과 주립 미술관인 예술아카데미(Kunsthalle im Lipsius-Bau), 구 작센 의사당(현재는 작센 주법원)이 위치해있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아우구스투스 다리, 엘베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괴테는 이곳을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테라스는 대계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톨릭 궁정 교회와 레지덴츠 궁전으로 연결된다. 브륄의 테라스 아래에서 엘베강을 따라 필니츠 궁전과 작센 알프스 지역을 오고 가는 관광용 증기선을 탈 수 있다.

그리고 드레스덴의 상징 츠빙거 궁전 (쌍둥이 궁전)이 유명합니다. 
이 궁전은 포스트 광장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궁전으로 1728년에 지어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이처럼 드레스덴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도시입니다.

그럼 오늘은 동독 문화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에 대해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다음 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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